지명유래

운계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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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봉화군 상운면 운계1리
상세내용

소야

약 500년 전 안동 권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후 안동군 북후면 물한동에서 진주 강씨가 들어와 살면서 안동 권씨는 봉화닭실로 떠나고 현재 진주 강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산다. 약 300여년 전 이 마을에 가뭄이 극도로 달하여 기우제를 올리니 비가 내려 농사가 대풍년을 이루었다 하며 소야라고 하고 운계1,2리 합하여 골이 많아 열두 (12) 소야라고 한다. 조선시대, 일제시대는 안동-봉성 (봉화의 옛지명) 간 큰길로 관통하는 길이였으며 본동은 골마, 버드나무골, 봉우골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강대봉이 일찍이 예수를 믿고 1957년에 운계교회를 세우고 주민계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착골

밤실 윗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의 언덕 모양이 완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완만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온순하게 하고 자손들의 번성과 곱고 착한 마음을 비는 뜻에서 착골이라 하였다 한다.

 

탑골

탁괴라고도 하며 본동 남쪽으로 정확한 전래는 알 수 없으나 이 폐탑은 고려시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왜정시대 (1941년 경) 상운 주재소 (지금의 지서) 순사와 면장이 탑속 에 있는 문서를 가져갔다고 하며 그 내용은 알수 없다. 또 150여 년 전 진주 강씨가 여러집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농경지이다. 1994년 경북 문화재 자료 제238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옛날에 절터로 추정되나 현재는 논 뚝에 서 있다.

 

구름재

옛날 안동부사가 봉화 행차 때 예고개재 (평은면 오운리) 에서 북쪽을 쳐다보니 산세와 경치가 아름답고 상서로운 구름이 가득차 있어 급히 말을 달려 50리를 와보니 재가 10리길 (상운면 소재지에서) 이었으며 이 재를 넘을 때 갑자기 소나기 구름이 덮혀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말을 몰아 재 위로 올라갔으나 구름이 말보다 늦게 도착하였다 하여 구름재라고 하였다고 한다. 상운의 명칭도 상서로운 상자와 구름재의 구름운자를 따서 상운면이라 칭한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봉고

소야 오른편골로 운계 문촌간 봉화산 (해발200m) 에 있으며 옛날국가 긴급사태를 알리는 봉수대가 있던 산밑 마을이라하여 봉화골,봉우골이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봉수대 터만 남았고 진주 강씨 10여호가 살고 있다.

 

우렁당

원당 위쪽 밤실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로 동네 당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은 약200년 묵은 느티나무 (당나무) 열두 그루가 있으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수해로 인해 당집이 물에 떠내려갔으며 그 속에 보관 중이던 방울이 함께 떠내려가 운계2리 안마 (더느실) 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주어서 장롱 속에 깊이 감췄다가 당집을 새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원당

약500년 전 경주 최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살던 곳으로 해마다 정월 그믐날 그해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소원성취를 위해 연못에 당집을 지어 재를 올렸다 하여 원당이라 하고 현재는 경주 최씨15호가 살고 있다. 그 외 주로 밭이 많고 어려운 시절에 죽 한 그릇에 밭을 팔고 샀다고 하는 주내밭골, 덕구재, 큰갓꿈, 물개자리, 짝짹골, 애들머리, 웃게, 갱투골, 고랭장골, 밤실, 말고개재, 비늪골, 풋구재 등 여러 골이 있다.

 

수박골

원당에서 상운방면 500m지점 왼쪽에 위치한 골로서 빈소에 상을 차려서 수박을 차려 놓은 형상이라고 하여 불려오고 있다.

 

비늪골, 비능골

수박골 건너편 골로서 빈소를 차려 놓은 형상이라 하기도 하며 능이 없는 골이라 하여 비능골.비늪골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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