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인물 및 참고자료
성안의(成安義)
1561(명종16) ∼ 1629(인조7) 조선 인조 때 문신. 성의성의 부(父). 자는 정보(精甫), 호는 부용당(芙蓉堂), 본관은 창녕. 창녕 성산(城山) 출신.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제자. 1591년(선조24) 문과에 급제, 벼슬은 사헌부 지평(持平)에 이르렀고, 영남지방의 조도사(調度使)로서 유성룡(柳成龍)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영해(寧海)부사, 남원부사를 역임. 광주목사에 승진하였다. 광해군 때 조정에 순응치 않아 파면, 1623년 인조반정이 되자 13년만에 사성(司成)으로 재등용, 상의원(尙衣院) 봉상시성(奉常寺正)을 지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로 왕을 따라 호종(扈從)하였고, 통정대부가 되어 제주목사로 있다가 한때 면직되었다. 뒤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취임치 않았으며, 죽은 후 이조판서 ·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성춘향(成春香)
고대소설 <춘향전>의 여주인공. 남원(南原)의 퇴기(退妓) 월매(月梅)의 딸.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李夢龍)과 백년 가약을 맺고 여러 우여곡절과 난관에 봉착하면서도 절개를 지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에게 구출되고 왕으로부터 정렬부인(貞烈夫人)이란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춘향가(春香歌)
판소리 다섯마당의 하나.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李夢龍)이 퇴기 월매의 딸 춘향과 사랑하다가 헤어진 뒤, 춘향이 남원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다가 옥에 갇힌 것을 이몽룡이 전라어사가 되어 구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
가평(佳坪)리, 가두들, 가구(佳邱)
계서 성이성의 고택이 있는 마을의 명칭으로 약 380 여 년전 창녕성씨 선조가 지금의 안마에 정착하면서 마을 언덕에 가죽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가구라고 불리워 오다 그 후에 음을 따고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의미로 가평, 가두들, 가구 등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남원(南原)시
전라북도 동남단에 위치하는 시. 백제때 고룡군(古龍郡)이다. 당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시켜 백제를 멸하고 유인궤(劉仁軌)를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史)로 삼았다. 그후 신라의 문무왕이 이 땅을 합쳤고, 684년(신문왕4)에는 소경(小京)을 두고, 경덕왕때에 남원으러 개칭하여 남원소경이라 하 였다. 940년(태조 23)에는 부(府)로 고치고, 1310년(충선왕 2)에는 다시 대방군(帶方郡)으로 하였다가 후에 남원으로 고쳤다. 1360년 (공민왕9)에는 또 부로 승격,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로 고쳤다.
세조 때 진(鎭)을 두었고, 관하에 도호부 1, 군 1, 현 9가 있었다. 그후 전국을 23부(府)로 구획할 때, 남원부로 되어 관찰사(觀察使)를 두었다가 이듬해에 부가 폐지되어 남원군으로 되었고 1981년 시로 승격 되었다. 명승고적으로는 춘향사(春香祠), 실상사(實相寺), 남원성지(南原城址), 광한루(廣寒樓), 오작교(烏鵲橋) 등이 있다.
광한루(廣寒樓)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소재하는 조선중기의 목조건물. 규모는 작지만 석주(石柱)위에 세운 누정(樓亭)으로 본래는 광통루(廣通樓) 였으나, 1434년 (세종 16)에 중건되어 정인지(鄭鱗趾)에 의하여 광한루라 개칭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635년(인조 13)에 재건한 것이며 <춘향전>의 전설로 유서 깊은 곳이다. 보물 281호.
오작교(烏鵲橋)
전설상의 다리. 음력 칠월칠석 저녁에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서로 만나게 하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또한 같은 이름의 다리가 전라남도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에 있어서, 소설 <춘향전>과 더불어 더욱 유명해졌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堂上官)인 문관·종친(宗親) 및 의빈(儀賓)의 관계(官階)
자헌대부(資憲大夫)
조선시대의 관계. 초기부터 정2품의 동반(東班 : 文官) 및 서반(西班 : 武官)에게만 주었으나, 말기에는 종친(宗親)·의빈(儀賓)도 이 관계를 썼다.
부사(府使)
고려 및 조선시대의 관직. '고려사' 식화지 녹봉조에 의하면 개성부(開城府) 및 지사부(知事府)의 수부사라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대도호부(大都護府)·도호부사(都護府使 :종3품)를 가리키는 말이며, 경주와 같이 종2품관을 배치하는 부의 수령은 부사라고 하지 않고 부윤(府尹)이라 불렀다.
부제학(副提學)
조선시대의 관직. 홍문관의 정3품관으로 제학(提學)의 다음이며, 직제학(直提學)의 위인데 정원은 1명이다.
홍문관(弘文館)
이조 때 경적(經籍)·문한(文翰)·고문(顧問) 따위의 일을 맡아 보던 관청. (동) 웅천도
목사(牧使)
조선시대의 관직. 전국 8도(道)에 두었던 정3품의 관원으로서 각 고을의 으뜸 벼슬이었다. ※ 경기도 3명, 충청도에 4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4명, 황해도에 2명, 강원도에 1명, 함경도에 1명, 평안도에 2명으로 모두 20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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