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봉양1리
주소봉화군 봉성면 봉양1리
상세내용
- 지 명 : 안분골ㆍ내봉곡(內鳳谷)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형상이 암봉의 모양과 같다하여 內鳳谷(내봉곡)이라 칭했다고 전해오며 다른 일설에 의하면 寧海朴氏(영해박씨) 石林公(석림공)의 묘터가 암부엉이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안분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밑에는 천연적인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의 빛깔도 희부연색이라 하여 암물이라 불렀다고하며 이 물을 마시면 피부가 고와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요즘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안분골이라 부르고 있다.
- 지 명 : 석기골(昔基谷)
봉양 북쪽에 있는 두리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잡은 마을로 옛날에 昔氏(석씨)들이 살았다하여 昔基谷(석기곡)으로 불렸다고 전해져 오며 두리봉 앞에 두봉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절에서 보면 영양 일월산이 그릇에 감을 담아 놓은 것처럼 보이며 절 앞에는 우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데 이 물에 목욕제계를 하고 물을 공손히 길러서 두리봉에 올라가 정성껏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어 극심한 한해시 동네 사람들이 그 곳에서 기우제를 올린다고 하며 예전에는 10여 가구가 거주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밀양박씨(密陽朴氏) 慶州孫氏(경주손씨) 3가구가 살고 있다.
- 지 명 : 성황당골
조선시대 때부터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성황님의 위폐를 모시는 성황당이 현재 권성운씨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있었는데 워낙 위엄하신 신령님이어서 사람들이 말을 타고 그 앞을 지나가면 말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말에서 내려 성황님께 공손히 절을 하면 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래서 그 밑에 下馬碑(하마비)라는 비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고 상황당은 백동골과 성황당골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에 옮겨져 이를 상당이라하고 5반에 있는 느티나무 숲을 중당, 봉양2리 3반에 있는 느티나무 숲을 하당이라하여 지금도 매년 정월 보름날 새벽이 되면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제를 상당부터 차례대로 올리고 있다.
- 지 명 : 양지마
정 남향을 향해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햇볕이 잘드는 마을이라하여 陽地(양지)마라 칭해왔으며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형국이 숫놈 같다하여 숫봉(雄峰<웅봉>)이라 칭하며 안분골의 내봉곡을 암놈 같다하여 암봉(雌峰<자봉>)이라 부르고 있다.
- 지 명 : 도대문골(都大門골)
옛날 골 거리에 큰 대문이 있어서 都大門(도대문)골이라 칭해왔다고 전해져 오며 이 골 앞산을 일산대백(산봉우리의 이름으로 이 마을에서 이곳에서부터 가장먼저 해가 뜬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암물이라 하여 이 물이 마을로 흘러들어 오는데 이 물이 이골 사람들에게는 흉상이어서 젊은 남자들만 죽는다는 풍수지리설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큰대문을 달아서 이러한 재앙을 막고 도둑도 방지하는 방패로 삼았다고 전해오며 언제 멸실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금은 큰대문은 없어지고 그 대신에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 지 명 : 잣그락골ㆍ백동(栢洞)ㆍ짜그락골
옛날 이곳에 잣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잣그락골이라 칭했다고 하나 박순호씨의 조부님이 이곳에 서당을 만들어서 제자들을 육성 학문을 가르쳤는데 이분의 호가 백동이라서 서당이름을 백동서당이라 칭했다고 하며 이후부터는 백동골이라 전해오고 있으나 지금은 임야로 그흔적을 찾을 수 없고 이집 뒤 돌틈에서 솟아 오르는 샘물이 있었는데 이골 사람들이 생활식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가뭄에도 샘이 마르지 않고 항상 물량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 지 명 : 바른골(正谷)ㆍ바든골
옛날에 골이 깊고 바르다하여 바른골이라 불리워 오다가 지금은 부르기 쉽게 바든골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골의 좌로는 유난터, 여우바골, 참사리골, 박산터로 우로는 윗가무내, 아랫가무내, 시집골로 형성된 큰 골이다. 농경지는 논과 밭으로 되어있고 대부분이 봉양리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있으며 맛과 품질이 좋은 것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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