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풍정1리

주소봉화군 법전면 풍정1리
상세내용

갈뱅이, 갈방(葛芳)
산줄기에 칡꽃이 많이 핀다는 갈방산 중턱 해발 600m지점에 있는 마을이며 풍정리 가운데 밑에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갈방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갈방이라고 하며 25가구가 살고 있다. 1940년대에 다덕광산이 번창할 때 외지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갈뱅이 마을 전경
 
명창골
산세가 아래명동은 月(월)자이고, 웃명동은 日(일)자의 형국같이 생겨서명동(明洞)또는 명창골이라고 하며, 조선 숙종 때 李時善(이시선)이라는 선비가 정자를 짓고 정자 앞에 연못과 큰 소나무가 있어 정자 이름을 松月(송월)제라 했으며 明月淸風(명월청풍)이라는 데서 明淸洞(명청동)이라 이름이 불려졌는데 지금은 명창골이라고 한다.
명창골 전경
 
불미골
명창골 북쪽으로 산등하나를 사이에 둔 마을로 풀피형상으로 되어있어 풀피야(冶)를 따서 야동 또는 불미골 이라고 한다.
불미골 마을 전경 

시드물, 풍정
460여년 전 3개군(순흥땅,안동땅,봉화땅) 지경에 우물이 있고 우물 옆에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단풍나무 풍자를 따고 우물정자를 따서 풍정(楓井)이라고 하며 지금도 우물뚜껑에 큰 글자로 풍정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다.(전 711-2번지) 또한, 마을 앞 냇가에 맑은 우물이 있고 우물 부근에 큰 신나무가 있다고 해서 시드물 또는 풍정이라고 부르며 본래 이 마을은 안동군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895년대 봉화군에 편입되고1914년 법전면에 편입되었다.
시드물 전경
 
사택
사택이 생기기 전까지는 단지골이라고 불리어 졌으나 1935년경 일본인들이 다덕광산을 개발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사택 43동과 목욕탕 1개소, 야구장 1개의 시설을 설치하였다. 그 시기의 광맥은 금, 은 등이 생산되었으며 광부 600명과 일본인 100명 정도 광산 개발에 종사하였다고 한다.해방이 되면서 광산이 폐광되고 광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까지 사택에 거주한 사람이 풍정리 정태진씨가 있었으나 93년도 사망으로 당시 거주자는 없다.
사택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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