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도심3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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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봉화군 춘양면 도심3리
상세내용

황터ㆍ황기ㆍ황기리
부족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에 句利王(구리왕)이 나라를 세우고 살았다 하여 황터라 부르게 되었다. 약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앞 숲에 당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구리왕의 위패와 구리왕에 대한 내력을 적은 기록문과 높이 약 15cm, 길이 약 20cm정도 크기의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가 함께 보존돼 있어 매년 음력 대보름이면 마을에서 나는 곡식으로 5일간 근신한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 왔었는데,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는 약 1980년에 분실되었고, 위패와 기록문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당집에 불을 놓아 소실되었다. 그후 동네사람들이 구리왕 유적이 없어진 것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던 차 82년도에 황터마을내 고층계에서 기금을 모아 옛날 당집자리에 비석을 세워 다시 옛 유적을 보존케 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句利王位牌墓基城隍位(구리왕위패묘기성황위)라 적혀있다. 그리고 황터 북동편 소라리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 성재이고 그 잿마루에 직경 20cm 정도(인두석) 강돌을 주워다 석성을 쌓았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구리왕 전설의 흔적이 엿 보인다. 또한 이 지방 전설에 의하면 九靈王國(구령왕국)이 大發兵三十入(대발병삼십입)하여 伐召羅國(벌소라국)하다는 기록이 新增東國與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데 그 九靈國(구령국)은 서벽2리 금정골안 高直嶺(고직령) 밑 골짜기에 있었다고 하며, 召羅國(소라국)은 서벽리에 있는 소라리라는 동명으로 미루어 볼때, 소라리 아니면 황터에 부족국가가 있어서 두 나라가 싸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약수동ㆍ약수물내기
도심 3리 문수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부터 약수가 나서 옻오른 사람이 바르면 효험이 많아 유명해져서 마을 이름도 약물내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양은 적으나 약물이 솟고 있어 인근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미ㆍ수산(水山)
도심 3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서 동네 뒷산 지형이 기러기가 물을 보고 내리는 平少 洛雁(평소 낙안)의 형상이라 해서 물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앞 강가에 있는 들을 갯들이라 하고, 뒤쪽에 있는 들을 갈밭들이라 하는 이름도 기러기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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