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두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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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봉화군 소천면 두음리
상세내용

군매리
 두음리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움푹 들어간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어 군매로라 하였으며, 마을이 서향이어서 음지매로라고도 한다. 마을 강변에는 갈매기무리가 와서 놀곤하였는데,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었다하며 이를 길조라 여긴 영천이씨 집안에서는 노호라는 정자를 지어 갈매기를 돌보았다고 한다. 영천이씨 집안의 최고 우두머리는 갈매기와 이야기도 나누었다하나 정확한 바는 전하지 않는다. 일제시대 때 정자가 철거되고 농토로 개간되었다.
 
호마니
군매리에서 1km에 위치한 이 마을은 110여년 전까지만해도 논에 물을 대기위해 봇도랑에 홈을 파 수로시설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홈 안의 마을이 세월이 지나면서 호마니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현재는 콘크리트 수로로 개수하여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세 그루의 무성한 배나무가 있어 행인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어 정자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임야에는 화전민이 산전을 개간하였던 흔적이 있으며 40년생 낙엽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새병리, 새배리
호마니에서 500m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8m가량의 벼랑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하여 새병리라 부른다. 과거 화전민에 의해 개척되었다하며 1950년대 치안 벌채 실시 후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교통로가 생겼으며 현재 농촌에 뜻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 부농의 꿈을 키우며 이곳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만인골을 가기 전에 자연적으로 생긴 총모양의 바위가 있어 신기함을 더하고 있다.
 
도시내, 도시천(挑始川)
듬골을 따라 4km 가량 가다보면 계곡을 끼고 양쪽으로 조금 넓은 평지가 나오는데 계곡주위의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무릉도원이 있어 여기서 신선들이 놀았다하여 무릉도원의 "도"자를 따서 도시내라 일컬어졌다고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50여 가구의 농가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었으나, 척박한 토질 및 주거 문화공간의 부재로 거의 도시로 이주해 가고 현재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맑은 물 등으로 안식교인들이 집단 이주하여 무공해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듬골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주민들이 대거주할 당시 설립된 임기초등학교 두음분교가 있으나 이농현상으로 모두 떠나고 전교생 8명 이내로 폐교 직전에 있다.
 
등골, 덕골, 영저
본래 안동부 재산현에 딸린 소천부곡의 지역으로 툰음티 아래의 골로 이름이 다양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등골로 알려져 있다. 골의 모양이 사람의 갈비뼈와 같다하여 등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본토인은 거의 살지 않으며, 타지역에서 들어온 안식교인들에 의해 마을이 변모하고 있어 토속미를 잃어가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사람의 갈비뼈처럼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이 골로 이루어져 있어 길은 험하나, 임산물이 풍부하여 산나물과 약초 채취가 성행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안식교인들은 깨끗한 물과 공기를 보존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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