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석포3리
상세내용
둔지
산중턱에 위치한 토지가 넓고 평평하여, 그곳에 올라서면 낙동강물의 흐름이 보이고 뒷산은 누워있는 듯이 아늑하다. 1800년초 마을을 이루어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 비옥한 토지로 유명했고, 평평한 지대가 마을을 짊어지고 가는 듯한 든든함이 있다 하여 둔지라고 붙여졌다. 6.25사변 때는 남침한 북한군이 퇴각할 무렵 국군과 치열히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이며, 북한군이 퇴각할 때는 산등성이 넘어 구덩이를 파고 양민을 학살한 비극의 현장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황곡
조선중기 때 김참판이라는 사람이 낙향하여 단종의 애사를 슬퍼하며,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제단 앞의 경치는 성과 같고 나무의 모양새가 제단을 향해 고개를 숙여 섬기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성황곡이라 불러졌다. 약 70여년 전 진주강씨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양지바른쪽에 농토를 일구어 옥수수, 고추, 감자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였으며, 지금은 17농가가 대추, 배추, 무 등을 재배하여 서울, 경기등 대도시에 판매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1976년에는 음지쪽의 산에서 납석이 발견되어 연간 3천톤의 납석을 생산하고 있다.
육송정
오래 전부터 삼거리 지점에 아름드리 소나무 여섯 그루가 병풍처럼 자라서 마치 정자의 모양을 이루어 서 있다하여 육송정이라 불려젔다. 그후 18세기말경 이곳의 소나무를 베어서 낙동강물로 운반하여 경복궁을 지을 때 기둥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온다. 또한 1985년에는 소나무가 자라던 그 지점에 육각형 정자를 신축하여 관광객이나 주민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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